미라클러의 맛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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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친절한 사람들과 함께한 초밥, 스시노무사시







한국인 사이에도 꽤 알려진 교토의 회전초밥집, 스시노무사시. 윙버스에는 무려 4.29의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 4.29라고하니 왠지 학점같구만. 저런 성적은 딱 한 번 받아봤다. 딱히 집중할만한 일을 찾지 못해서 매일 새벽 두 세시까지 공부만 하고 다녔던 학기. 그런데 이상하게 장학금은 못받아서 당황했다. 뭐지. 아직도 미스테리한건 3.2를 받았던 학기에는 성적장학금을 거머쥐었다는 사실. 겉으로 표현은 안했지만 회전초밥집이 거기서 거기지 뭐 하는 나의 심드렁한 태도에 계속해서 의욕을 북돋워준건 자꾸만 여기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는 동생이었다. 그래서 왔다. 스시노무사시.






서류상으로 나는 분명 한자급수 1급과 2급 모두 보유중.. 동생도 어릴 때부터 꽤나 한자를 하긴 했.. 는데 둘이서 제대로 덤앤더머 많이 찍었다. 오오사카 근처였나 왠 대형간판에 요 두 글자만 있는 것을 봤다. 옥자玉子.

'옥의 아들? 흠 뭘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진지한 표정의 동생이 옆에 서서 말했다.
"옥의 동생? 흠 뭘까?"


-_-;;;;;;;;;;;;;;;;;;;;;;;


이제 모든 의문은 풀렸다. 옥자가 계란으로 만든 지단이었다니. 중국에서도 그랬지만 전혀 모르는 외국어가 모국어인 나라로 가면 왠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중국에서는 냄비에 팝콘을 튀기던 남자가 넉살좋게 웃으면서 한참을 뭔가 이야기했지만 그중 내가 알아들은건 한궈런 뿐이었다. 1원씩 주고 사먹던 맛좋은 빵 파는 누나(?)도 웃으면서 뭘 이거저거 물어보는데 대관절 무슨말인지 알아들을수가 있어야지. 에라이- 그냥 웃으면서 돈을 내밀었다.

그때 실습(practicum)을 나가던 곳은 국제학교라 주로 영어 수업이 많았는데 영어권 원어민 강사나 교수야 그전부터 익숙했으니까 큰 의미는 못 느꼈고, 옷을 참 깨끗하게 잘 입는데다 한국사람인 내가 봐도 매칭도 훌륭하다는 느낌이 드는 중국어 교사가 있어서 수업은 어떻게 하나 싶어 참관을 해도 좋겠냐고 말씀드렸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나한테 말하는 중국어는 최대한 친절하고 느리고 쉬운 단어로만 말한 거였다. 그런데 수업 시작과 동시에 아이들한테 쏟아내는 언어는 내가 아까 들은 그 언어가 아닌갑다 싶을 정도. 어? 으잉?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오늘은 누구누구 선생님이 특별히 이번 수업에 참관하기로 했으니 환영의 박수를 쳐줍시다 정도가 아니었을까. 내 이름이 중간중간 등장하는 것 같다 싶더니 아이들이 뒤에 서 있는 나를 보면서 와아 함성과 함께 박수를 친다. 이러지마 안돼. 흐악. 허허, 결국 나도 웃으면서 박수를 같이 쳤는데 뭔가요 이거.

생각은 해왔지만 여전히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사항인데 동양어권 언어 중 하나, 유럽어권 언어 중 하나 정도는 여행하는 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까지는 공부할 필요가 있다. 아이튠즈를 이용해 이리저리 팟캐스트를 헤집고 다니다보면 외국어 학습 콘텐츠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한국어 강의도 상당하다. 호오. 눈 파란 미국인이 한국어 회화가 제법이다. <예스맨>에서 짐캐리가 "쳥쥬 날씨느은~ 어때요오~?"하는 장면을 볼 때처럼 그저 신기하고 귀엽다. 몇 몇 인기 팟캐스트는 아예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학습서로 출간되었다. 라틴어 팟캐스트에는 정말 방대한 양의 강의가 축적되어 있고 강의록과 학습자료까지 충실하게 올려져있다. 먼지 쌓인 내 Wheelock's Latins에 다시 원기를 불어넣을줄 수 있는 팟캐스트군. 그런데 이게 다 무료야? 무료라니! 내가 처음 팟캐스트라는 말과 개념을 들었을 때는 그냥 라디오 방송(ebs 라디오 어학코너 재방송 듣는거 월 별 얼마씩 돈낸다. 게다가 녹음도 막아놨다)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막상 이리저리 카테고리를 바꿔가면서 어떤 팟캐스트가 있나 구경하고 다닐 때는 이거 완전 금광을 찾아다니던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쑤욱쑤욱 양질의 콘텐츠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데에 감탄했었다. 오옷 이런 것도 있네. 우와 굉장해!!! 이런 것도 이렇게 방송할 수 있구나- 하면서 하루종일 구독 버튼을 클릭- 클릭- 클릭-. 재방송을 듣는 데에도 상당한 돈을 결제해야 하는 구세대적 시스템을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팟캐스트에 어학 소스는 무궁무진하니까.

그나저나 여행 중에는 생각외로 영어만으로 전혀 불편함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다는 사실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른 외국어도 공부하겠다고 결심하지만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그 결연한 의지는 증발한다. 이런 휘발성 의지같으니라고.





스시노무사시 문을 열고 들어가 가게 제일 안쪽을 안내 받아 앉았을 때, 우리의 행동에서 외국인이라는 티가 났는지 내 왼쪽에 앉은 일본인 커플은 나를, 동생 오른쪽에 앉은 아주머니는 내 동생의 테이블 세팅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어엇, 갑작스럽게 받는 친절에 당황해서 어어어 하는 사이 순식간에 찻잎이며 젓가락, 도기 컵에 담은 따뜻한 물, 간장과 종류별 소스병과 종지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각각 소스 종류와 재료, 맛 등을 설명해주는데 '처음 오사카에 스시를 먹으러 갔을 때 옆자리에서 먹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 주시던 일본 아주머니들이 기억난다'는 까날님의 문구가 나한테 고스란히 재현될 줄은 몰랐다. 동생을 도와주시던 아주머니는 먼저 일어나면서 Have a nice day라는 말과 함께 사요나라- 인사를 남기고 나가셨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주머니가 가시고 난 다음 그 자리에 새로 앉은 할아버지가 또 이것저것 설명해주신다. 차근차근 이건 어떤 고기고 어떤 부위인지. 동생이 먹고 싶어하는건 따로 사람을 불러 주문을 도와주셨다. 방금 막 올려진 해마 초밥 접시를 집더니 우리쪽으로 내미신다. 프레젠또, 프레젠또. 오옷,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처음 먹어본 해마 초밥은 놀랍게도 고소하고 담백한 베이컨 맛이었다. 굉장하잖아 이거.

할아버지가 붕장어 접시를 집으시는걸 보고 나도 따라서 얼른 집었다. 이거 맛있나? 어디. 오오오. 부드럽고 매끈하잖아. 할아버지의 손짓을 주의해서 보자. 참치를 그냥 흘려보내시더니 참치 뱃살을 집으신다. 참치라면 나도 엄청 좋아하는 고기다, 나도 접시를 집어들었다. 흐엉. 이건 그냥 진짜 살살 녹는다. 동생은 연신 할아버지한테 이것저것 물어봐가며(한창 드시고 계신 할아버지 리듬 깨지게 질문을 하면 어떻게 하냐고! 질문 타이밍을 맞춰 쫌! 눈치를 줬으나 근데 또 웃음터지는건 우걱우걱 드시던 할아버지는 질문을 받으면 곧바로 읭? 하는 표정으로 동생을 한 번 보고, 동생의 손짓을 한 번 보면서 또 요래요래 설명을 해주신다는거다)- 직원한테 따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해가며 접시를 쌓느라 정신이 없다.

연어는, 말을 말자. 내가 알던 그 연어의 맛이 아니었다. 연어 맛이 입에서 아쉬움과 함께 감돌길래 이번엔 소스와 양파를 얹은 연어 한 접시를 가져다 먹는데 이건 정말 최고의 식감. 이보시오. 여기서 연어 행진을 멈출 수 없소. 훈제 연어를 가져다 먹는다. 호오 이건 훈맛과 연어의 부드러운 속살이 한데 어우러져있다. 뒤이어 동생의 추천으로 노른자와 알로 뒤덮힌 군함을 먹는데 이건 정말 미각의 신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장어.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장어가 있으면 몸에 좋다니까 마지못해 몇 점 먹었지 무슨 맛인지는 도통 몰랐는데, 주인장한테 따로 스페셜 장어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해서 꿀꺽 침 한 번 삼키고 입에 넣었는데 오오오- 이건... 너무 맛있다. 아니, 이건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 아냐. 이 느낌은. 굉장히 부드럽고, 흐억, 천천히 음미하며 놓아주고 싶었는데 장어녀석이 내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충분히 맛을 음미하기 전에 장어는 그렇게 녹아서 목구멍 너머로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가 감동과 아쉬움이 남았다. 옆에서 동생은 여전히 연신 스미마셍을 외치며 이것저것 따로 주문하고 있다. 회전하고 있는 접시가 아니라 방금 만든 윤기 좔좔 흐르는 스시를 맛보기 위해서다.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보면서 감탄했던 건 작가가 가진 식견의 깊이였다. 만화책을 읽으면서 뭔가 배우는 느낌이 들다니 좋은 만화책이다. 모 작가님의 13층에서 뛰어내려도 지면에 닿기 직전 180도 몸을 회전해 착지하면 두 다리 뼈는 부러지지만 목숨은 건질 수 있다거나 저녁 8시는 사람이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잔인해질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상식과 대조적이다. 옥자玉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미스터 초밥왕>에서는 계란말이 이야기에만 한 권을 소요했다. 잘 만든 지단은 부드럽고 달아서 카스테라 같은 식감을 전달한다. 신선한 계란에 술, 소금, 간장, 미림 등으로 만든 와리를 배합해서 굽는데, 쩝. 설명해봐야 전달은 제대로 안되고 간사이에 오면 계란을 올린 초밥도 먹어볼만하다.






계산하고 나올 때의 초밥집 풍경. 가득차고 줄 서있던 손님들이 어느새 다 빠져나가고 초밥접시에는 뚜껑을 씌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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