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러의 맛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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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게스트하우스 샤워룸의 야동남녀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선 첫날이었다. 호텔 라이잔 옆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고, 호스텔배커 사이트를 통해서 알아본 곳이었다. 리셉션을 보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친절하게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알려주셨다. 로비에는 왠 일본인 여자가 서양인 남자한테 영어 교재를 보이며 이것저것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What makes- 따위의 기본 문장 패턴을 바탕으로 한 교재같았는데, 그런 기초적인 패턴형 교재를 공부하면서 굳이 서양사람한테 물어볼 '꺼리'가 과연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장어초밥을 먹었다. 굉장하다. 덜 깬 잠이 확 달아난다. 장어가 이렇게 부드럽고 맛있는 식재료였다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침 9시. 샤워를 해야겠는데 누군가 쓰고 있다. 초저가형 게스트하우스의 불편함은 역시 공용 샤워부스와 공용 화장실이다. 첫날인가 둘째날이었나, 아무 생각없이 남성용 소변기 앞에 서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왠 젊은 여자가 스미마셍- 하면서 날 지나쳐 좌변기가 있는 칸으로 쑥 들어가 규칙적으로 물 떨어지는 소리를 낸다. 뜨헉. 맞다, 여긴 초저렴형 게스트하우스였지. 그날부로 난 작은 일이건 전날 먹은 음식물들에게 다시금 세상의 빛을 보여주려는 일이건 무조건 좌변기가 있는 칸으로 들어가서 해결했다.




아홉시반. 30분이 지났는데 샤워실 안에서는 물 소리만 계속 난다. 샤워실 문 팻말에는 여자가 샤워중이니 잠시 기다려달라는 메시지만 적혀 있다. 처음에는 나 혼자였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어느새 세 명으로 늘었다. 답답한 마음에 손잡이를 돌려본다. 어라, 문을 잠궈놨네. 아- 춥다. 리셉션을 보는 할아버지가 우리쪽을 흘끗 본다. 눈이 마주친다. 멋쩍은 표정을 지어보인다. 곧 나오겠죠 뭐.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은근한 화가 나기 시작한다. 아니 무슨 샤워를 이렇게 오래 하는거지? 여기가 무슨 온천이라도 되는거야? 9시 50분. 나, 금방 샤워할 줄 알고 이 추운 날씨에 면티 한 장만 달랑 입고 수건이랑 간단한 세면도구만 들고 50분동안 여기서 추위에 떨어야했다.
그런데 오, 샤워기 소리가 그친다. 드라이기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어라? 드라이기 소리가 멈추더니 사람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쭈. 남자 목소리도 들린다. 점점 화가 많이 치밀어오른다. 아니 여자가 샤워중이니 기다려달라는(접근하지말라는) 팻말은 붙여놓고 왜 남자 목소리가 들리는거야? 남들 못들어오게 해놓고 오붓하게 둘이서 샤워할거면 호텔로 가든가. 가만, 근데 이건 양놈 목소린데. 뭐지? 하고 있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하도 안나오니까 리셉션 할아버지가 와서는 문을 두드리며 뭐라뭐라한다. 사람들이 줄서있으니까 빨리 나오라는 말이겠지. 안에서 여자가 일본여자들의 그 독특한 음정으로 대답한다. 금방 나가겠다는 거겠지.

그런데 곧 나가겠다던 사람들이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않는다. 다시 드라이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왠지 드라이기를 들고 여기저기 돌려가며 머리를 말리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켜놓고 탁자 위에 올려놓은 소리가 난다. 아 왠지 불안한데-. 그런데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는 법.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떤 소리냐고. 19금 동영상에나 나올 괴이한 소리. 아니, 늬들이 뭘하든 상관없어. 없는데, 대체 대관절 내가 왜 이 타지에서 이렇게 추위에 떨면서 이런걸 듣고 있어야 하냐고. 에라이-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중국인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아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나와 같은 심정인 것을 알 것 같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열린다. 역시 내 예감이 맞았어. 양놈이다. 유카타를 입고 있다. 어떻게 생겼나 얼굴 좀 보자 싶었는데 먼저 2층으로 휙 올라가버린다. 고놈 참 빠르네. 한 명은 왜 안나와. 안에 여자가 서있다. 어라? 첫날 되지도 않는 짧은 영어로 간드러지게 웃으면서 서양남자와 영어를 공부하던 그 여자다. 헐. 게다가 커플 유카타야. 진짜 웃긴건 이 여자가 우릴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뒷걸음질로 슬금슬금 나가려한다는 거다. 즐기고는 싶고, 창피한 걸 알긴 안다 이거냐? 니가 아무리 영어를 못해도 저번에 그렇게 그 남자랑 많이 연습했던 What makes 문형으로 말하면 알아듣겠지.


- 대체 뭐가 여기가 네 집처럼 느껴지게 한건데?

여자가 I'm sorry. 한 마디만 하더니 후닥닥 올라간다. 에잇. 샤워하고 동생 깨워서 씻고 오게 했더니 벌써 11시다. 오전 내내 찝찝함을 지울 수 없다. 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이탈리아에서의 악몽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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