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뭉그적거리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면 커피는 애호품을 넘어 필수품이 되고 만다. 자신의 작업실이나 지인의 작업실을 소개하는 책에서 꼭 커피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런데서 연유할게다. 그동안 집중하고 있던 일에서 잠시나마 해방되어 긴장을 푸는 데에는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것만한 일이 없다. 커피 한 잔을 내리기 위해 꽤 많은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수고로움은 내가 자처한 수고로움이기 때문에 번거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커피를 내리는 행위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뭐얏, 커피는 각성제에 가깝잖아- 음 조금만 더 들어보시라. 물을 끓이고 약간의 물을 드립퍼와 드립서버를 예열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붓다보면 노곤한 의식은 저절로 환기된다. 내가 고른 드리퍼의 재질은 도기라서 열전도율이 낮기 때문에 미리 예열을 해두어야 알맞은 온도로 커피를 내릴 수 있다. 부모님한테 커피를 내려드리겠다며 예열 과정 없이 바로 커피를 내렸다가 충분히 뜨겁지 않다는 피드백이 바로 돌아왔다.
흙으로 빚을 수 있는 도기는 부식에도 강하고 깨지지 않는한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반면, 플라스틱 드리퍼를 만드는 회사측에서는 내열 플라스틱이니 AS 혹은 PP 수지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방금 전까지만해도 펄펄 끓던 물을 플라스틱 용기에 붓는 건 찝찝함이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 뜨거운 물을 계속 받아서 그런지 내부벽이 일어난다는 말도 있다. 동 드리퍼는 고가의 가격과 까다로운 관리가 단점이다. 유약을 바른 채 1000~1200도에서 도토로 구워낸 그릇인 도기는 썩지도 않고 그 온기는 오래간다.
마음에 드는 도구, 좋은 도구의 선택은 언제나 중요하다. 값으로 치면 얼마 안되는 물건이지만 이 도기를 통해서 부드럽고 맑은 커피가 내려진다. 세 개의 추출구 덕분에 물빠짐이 일정하여 초보자가 사용하기에도 무난하고 안정적인 맛을 곧잘 낼 수 있다.
멀리 사는 친구가 작센하우스 핸드밀을 장만했다고 연락해왔다. 독일의 작센하우스는 130년이 넘도록 그라인더를 만들어 온 커피 분쇄기의 명가다. 평생을 사용해도 무뎌지지 않는다는 날은 독일의 최상급 철강으로 커팅 기어를 만든데에서 기인한다. 내가 쓰는 칼리타의 핸드밀은 단순히 '원목'으로 만들었다는 점만 표기되어 있을 뿐 그 출처는 알 도리가 없지만 작센하우스는 독일의 너도밤나무를 아낌없이 쓰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표기하고 있다. 귀찮지만 직접 손으로 돌려 커피를 간다는 건 일종의 의식이다. 좋은 소리와 편안한 감촉이다. 함께 마실 사람이 있으면 있는대로, 혼자 마실 커피를 갈고 있는 것이라면 그대로 맛있는 커피로 이어진다. 편리한 전자동 분쇄기를 멀쩡히 놓고도 수동 핸드밀을 돌리는 사람(위에서 말한 친구-_-)은 이쪽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 눈에는 별 이상한 사치를 부리는 녀석으로 보이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시간에 쫓기는 와중에 풍요로움을 누릴 줄 아는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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