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 오사카
2005년 2월에 명동에 있는 노스페이스 매장에서 30L 용량의 레콘(레콘2였나) 백팩을 샀었다. 캐리어를 가지고 해외로 나간 적도 있지만, 역시 배낭여행은 캐리어보다는 백팩이다. 작년에 아버지 생신 선물로 등산용 K2 백팩을 사드렸는데, 오옷, 이건 배낭 자체에 가방 전체를 덮을 수 있는 레인 커버도 달려 있는데다 요모조모 훑어보면 볼수록 정말 사용자의 편의를 굉장히 많이 고려해서 만들었다는 느낌이 확확 와닿게 만들어진 가방이었다. 지퍼 하나, 주머니 하나도 어떤 동작으로 손을 뻗어 열 수 있을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물건을 담아 사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서 만들었는지 여행자 입장에서 확 와닿는다고나할까. 이걸 만지작거리면(심지어 엄지와 검지로 만져보면 가방의 재질까지도 노스페이스보다는 요 K2 가방이 더 고급스럽다) 뭔가 백팩을 새로 구입하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거린다. 그런데 워낙 많은 곳을 함께 해왔다는 느낌 하나 때문에 여전히 여행을 할 때는 6년째 사용중인 노스페이스 레콘으로 손이 간다.
게스트하우스에 백팩을 모셔다 놓고 밖으로 나갈 때 어깨에 걸치고 나가는 보조가방은 언젠가 오다가다 캠프 뉴욕 가방을 5,000원에 팔길래(정가는 49,000원) 얼른 집어온 물건인데 유럽이든, 중국이든 어딜 가도 항상 가지고 다닌 실용적인 녀석이다(보조 주머니가 많고, 방수가 된다). 그동안 동생이 갖은 유혹과 더불어 매매 제안을 해왔던 물건. 어디가서 5천원에 이만한 물건 구할 도리가 없다. 절대 팔 수 없음.ㅋㅋ
매년 최신 장비로 바꿔가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 눈에는 구닥다리로 보일 니콘 D80은 4년째 쓰고 있는 터라 이제 손에 많이 익어 파인더를 들여다보는 행위 자체가 동선이 많이 짧아진 느낌이다. 장비가 많고 잘 모르는 기능이 많으면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 중간에 잠시 카메라를 바꿀까 하는 생각을 아예 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데이비드 알란 하비가 니콘 D70에 35mm 단렌즈 하나만 들고 와서 장비를 무시하는 듯한 기자의 질문에 '이 카메라만으로 모든 것을 다 찍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대답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던터라 장비에 대한 욕심은 깨끗이 버릴 수 있었다(게다가 내 D80은 D70보다 상위 기종이지 않나). 일본 간사이 지방을 둘러보고 있는 지금은 정확히 D80에 35mm 단렌즈 하나만 들고 있다. 삼각대도 줌렌즈도, 카메라 전용 가방도 없다. 인공적인 빛을 모아 갑작스럽게 펼쳐대는 통에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을 놀래키는 플래시는 잊은지 오래다. 빛의 양이 적든 많든, 자연광에 의존해 찍는게 내 성격에 맞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이 들었다는 점이 가장 커졌다. 센서가 빛을 발아들여 표현할 수 있는 범위인 다이나믹 레인지, 계조 모두 최신기종에 비해 좁고, 예민하고 독특한 측광 방식은 불편하지만 그간 많은 순간을 함께 해와서 요녀석을 쉽게 내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음. 가끔은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지려고 카메라를 막다루는 주인을 만나서 비도 많이 맞았다. 벨기에에서는 틈만 나면 소나기가 내리는 탓에 전면이고 후면이고간에 무참하게 빗방울을 맞았지만 멀쩡하게 셔터가 눌렸고, 메모리카드에 사진이 담겼다. 당연히, 니콘 측에서는 D80을 만들 때 방진방습 기능을 포함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직도 내 D80에는 자체 방수 기능이 있다고 믿는다(어제도 비를 맞았다. 하지만 멀쩡하군). 싱가포르에 있을 때는 똑같은 기종을 쓰는 싱가포르인 할아버지를 만나서 서로 꽤나 반가워했다. D90보다 D80이 좋은 이유를 이야기하고 공감하면서 왠지 우리 둘다 자기합리화의 달인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싱가포르에서 취미로 사진을 하는 할아버지도 새로 출시된 D90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에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지만ㅋㅋ
2010년. 아직은 멀쩡하다. 하지만 멀쩡한 겉과 달리 속은 어떨지 모르겠다. 어느날 갑자기 작동을 멈추면 난 무척 슬플게다. 이 녀석과 함께 여행한 나라가 이미 10개국이 넘었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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