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러의 맛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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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타인의 독서편력 엿보기, <깐깐한 독서본능>







작자는 5년 간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블로그에 적었다. 그리고 그 서평을 책으로 펴냈다. 여전히 내게는 컴퓨터 스크린으로 보는 글과 인쇄된 활자를 들여다보는 행위 사이에는 꽤 큰 간격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런 책이 반가웠다. 자칫하면 글쓴이의 블로그를 하루종일 클릭하고 링크를 따라가며 수고했을 일을 누군가 대신해서 깔끔하게 편집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두었으니 말이다. 타인의 독서일기나 편력을 엿보는 행위의 쾌감은 꽤 강렬하다. 서평을 적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텍스트를 구성하는 한 문장 한 문장, 심지어 하나하나의 단어에까지 세심하게 고르고 선택한 글쓴이의 의도를 정말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독자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읽기 행위에 있어서 독자는 순전히 자신의 해석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권력자가 된다.




그래서 서평을 적는 일은 힘들다. 블로그에 조금이라도 담론을 형성할 수 있거나 많은 논의가 오갈 수 있는 주제를 담은 텍스트에 대한 개인적인 소감을 적는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조금이라도 무거운 주제를 다루자면 내 밑천을 포장없이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완곡하게 돌려서 말했는데,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드러낼 바닥이 없을 정도로 지식이나 사고의 깊이가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충분히 곱씹고 몇 번이고 반복하기로 계획했었던 도서 목록을 모두 소화해낸다면 그때부터는 바닥이 드러나도 어딘가에 조금 무거운 주제를 다룬 텍스트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을 공개할 수도 있겠다.




김훈은 자전거를 좋아한다. 자기 소개를 할 때 소설가나 작가라는 단어는 쏙 빼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으로 말할 때가 많다. 그의 문장은 군더더기없이 간결하다. 덕분에 독자는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가며 읽는 속도를 올려간다. 몇 개씩 베스트셀러를 연달아내며 문학상도 타고 돈도 벌었다. 자신은 마초가 아니라 도리어 페미니스트에 가깝다며 장황하게 이야기하지만 듣고 보니 마초가 뭔지 페미니스트가 뭔지 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마초로 판명나는 경우가 다반사인 여타 글쓰는 사람들과 달리 김훈은 귀엽게도 스스로가 마초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작가로의 등단을 꿈꾸는 사람들 중에 꽤 여럿은 김훈의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해본다. 그의 문장을 배워보기 위해서. 불확실한 팩트fact와 경제 상황이 어우러지고, 경기는 불황일수록 역사적 사실을 다루거나 재조명, 혹은 가공한 역사물이 인기를 끈다. TV에서뿐만 아니라 읽는 책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일어났고 고정된 역사를 돌이켜보는 과정을 통해 불안정한 현실 기반 위에서 일종의 도피감 내지는 안정감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사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아니고 강단 위에서 교수님이 언급한 내용이었다.




다른 교수님의 이론 시간에, 어느 학생이 겁없이 저 내용을 고스란히 가져다가 발표를 하고(그 두 교수님의 수업을 해당 학기에 동시에 듣는 학생이 자신 외에 없을거라고 생각했는지) 긍정적인 평을 들었다. 누군가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앵무새처럼 교수님의 의견을 형태만 조금 달리해 읊을 뿐이었다. 비겁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 말고,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다른 이의 텍스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서 말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동시에 떠올리며 그냥 수업이 끝난 후 발표문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갔다.  




책은 세상을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는 통로이지 모셔두는 금단지가 아니다. 모셔두는 것에는 활동이 없고 늘 제자리에 머물기 쉽다. 텍스트가 그 형태를 넘어선 생명을 얻으려면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고 의문을 갖고 내 시각에서 해석을 해보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하지만 겁 많은 나는 쉽게 읽고 상이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텍스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익명에 가까운 필명으로 활동하는 인터넷에조차 공개하지 않는다(못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아마도 당분간, 혹은 꽤 오랜 기간, 알랭 드 보통이나 앨빈 토플러 같은 이들이 적은 텍스트는 그 책을 읽어봤고 인상적인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정도만 공개하겠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문학과 철학적 사유가 내포된 글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슬쩍 슬쩍 멀찍이서 지켜보면서 혼자 읽고 혼자만의 해석과 생각에 그칠 게다.




그래서 이 책은 꽤 읽을 만하다. 어지간한 용기가 없다면 이런 책을 펴내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어랏 이건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네 내지는 나는 다르게 생각하는데 싶은 부분들이 공존한다. 어떤 면에서는 이건 좀 피상적인 수준의 접근에서 멈춘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을 게다. 반대로, 같은 텍스트를 읽고도 나는 생각지 못한 면이 있을 수도 있고. 하여간, 타인의 독서편력을 엿보는 행위는 일종의 묘한 쾌감을 동반한다.



깐깐한 독서본능 - 6점
윤미화 지음/21세기북스(북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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