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러의 맛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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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입국, 창이공항, 락사









난 여행 전 미리 온갖 정보를 모으고 세밀하게 조사하고 여행을 하는 성격이 아니다. 여행지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를 일이 있으면 관련된 미술개론서를 몇 권 읽어보고 떠나는 정도. 싱가포르를 여행할 때도 싱가포르의 역사를 다룬 책을 읽어본 게 전부였다. 가이드북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서 여행 전날 받아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야 훑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비행기에서 가이드북을 훑어보니 책 선택을 잘못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그리고 여행하는 내내 이 불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론리플래닛 싱가포르 편이 너무 얇길래 비교적 페이지수가 많은 국내판을 산 것이었는데, 저자가 고작 1명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고, 국내에서 출판되는 여행 가이드북 출판사와 저자의 사정은 듣지 않아도 뻔한 것이고. 




여행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식도락 기행이다. 그런데 가이드북을 보니 식당은 몇 몇 곳을 제외하면 한 끼에 50$ 이상인 곳들로만 소개를 해두어 나한테는 거의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동안 여행 가이드북을 쓰는 저자들의 고충도 여러 경로를 통해 많이 들어 알고 있었고, 그걸 감안하고 전반적인 큰 줄기만이라도 잡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구입한 것이었는데 꽤나 내 의도에서 빗나간 느낌이었다. 이건 마치 서울을 여행하면서 가볼 만한 식당으로 신라호텔이나 인터콘티넨탈의 다이닝 바를 추천받은 격이었으니.




휴. 사람마다 취향은 다양한 것이 사실이나 나는 현지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현지인들로 북적거리는 서민적인 식당을 알고 싶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윙버스의 싱가포르판 같은 자료?
(난 서울을 둘러보려는 외국인들한테도 론리플래닛에 실린 식당도 좋지만 윙버스 자료를 주면서 그 안에실린 곳들을 찾아다녀보라고 이야기한다)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에 내렸을 때는 먼저 숨이 턱 막혔다. 에어컨이 나오는 공항 실내인데도 덥고 음습한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바깥은 아마 이것보다 더 덥고 더 습할게다. 창이공항에 내려서 애초에 택시를 타려던 계획을 수정해 MRT를 타기로 했다. 오후 1시 반 정도에 도착해서 열차에 사람도 얼마 없을 것 같고 치안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편이라 내린 결정이었다.

티켓오피스로 가서 가이드북에서 봐둔 투어리스트 패스 렌트권을 달라고 했다. 렌트권 같은 건 없고 1,2,3일권만 판다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결국 1회용 스탠다드 티켓을 끊어 MRT 자리에 앉아 가이드북이 옛날 건가- 책을 들춰보니 2009년 5월에 발행되었다. 인쇄한지 채 세 달이 넘지 않은 신간이었는데, 여행 가이드북은 출판되는 순간 그 안의 내용들은 구식 정보로 바뀌는 경우가 많으니 어쩔 수 없는 면인 것 같다. 


가이드북에 의지할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잘됐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 쓴 1회용 스탠다드 티켓은 발권기에 집어넣으면 보증금 1달러를 다시 돌려주는데 내 앞에 있는 한국인 남자가 카드를 쑥 넣고는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보더니 옆에서 '된거야? 된거야?'라고 묻는 여자친구한테 '응, 된거야'라고 말하고 역 밖으로 걸어나갔다. 내 스탠다드 티켓을 넣고 Refund Deposit을 클릭했더니 앞사람 몫까지 2달러가 나왔다. 뭐지 그 남자. 버튼 여러개 누르더니 여자친구한테는 대체 뭐가 된거라고 이야기했던거지.










처음으로 낯선 땅에 발을 내딛는 느낌은 그때마다 새롭다.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에 처음 내려서 사진으로만 보던 운하가 내 눈 앞에 펼치진 모습을 보고 그냥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야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들어 파인더를 들여다보면서 셔터를 누르며 생각했다. '내가 진짜 베네치아에 왔구나'

뜬금없지만 2009년 8월호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니 베네치아가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의 물결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우리나라가 몸살을 앓는다는 소식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인터넷을 통해 예약했던 호텔 리셉션에 보증금을 내고 짐을 풀었다. 직원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더니 한국인은 이 호텔에 잘 안온다고 했다. 좀 싸게 자보려고 한국인들이 자주 참조하는 가이드북이나 사이트에 명시되지 않은 곳까지 뒤져서 왔다고 하니 웃었다. 그렇다고 후미진 곳도 아니고 오차드로드에 있는 곳이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명동이나 강남에서 자는 거라고나 할까.











싱가포르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먹은 음식. 락사Laksa. 페라나칸 스타일의 대표적인 요리라고 한다.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외관이지만 과감히 도전했다. 뜨끈하게 우려낸 코코넛 밀크에 숙주와 해산물을 넣고 끓여낸 국물에 반투명하고 오동통한 면을 말아낸다. 그리고 그 위에 매콤한 양념장을 얹어 준다. 면의 씹고 끊는 질감이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이라 신기했다. 남기지 않고 국물까지 모두 비웠다. 음식이 육개장처럼 얼큰하면서도 동시에 느끼할 수도 있다는 진귀한 체험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국물 맛에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고 한다. 참고로 나는 이 날 이후 락사는 두 번 다시 먹지 않았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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